흥청망청 뜻과 유래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흥청망청의 한자는 興淸亡淸입니다. 興 일어날(흥) 淸 맑을(청) 亡 망할(망) 淸 맑을(청). 이 표현은 보통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쓰다가 망한다’는 의미 또는 ‘일은 안 하고 흥청망청 논다’ 라는 표현에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의 어원은 조선 시대 연산군이 채홍사를 전국에 파견하여 전국팔도의 미녀들을 선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고을에서 선발된 기생들을 관리하였습니다. 기생들을 운평이라 하였고 운평이 궁궐에 들어가면 흥청으로 불렸습니다. 흥청 중에서도 임금과 잠자리에 들면 천과 흥청이라 하였고 그 반대를 지과 흥천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놀러 다니며 흥청들을 말에 싣고 다녔는데, 민간 유부녀도 겁탈하였으며 심지어는 연산군 자신의 숙부 월산대군의 부인마저 겁탈했다고 합니다. 결국,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고 목숨을 잃으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겨난 말이 흥청망청이라고 합니다.
연산군은 어떤 왕인가?
연산군은 조선 시대 제10대 국왕으로, 1494년 12월 29일부터 1506년 9월 2일까지 12년간 재위했습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 사냥, 음행 등으로 국가를 흔들어놓았습니다.
연산군이 흥청들과 놀았다는 장소인 경회루는 무엇인가요?
경회루는 경복궁 내에 있는 건물로,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주재하거나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곳입니다. 경회루는 1412년에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건물이 불타 돌기둥만 남았지만 1867년에 재건되었습니다. 현재 국보 2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채홍사란 무엇인가요?
채홍사는 연산군 때, 미녀와 좋은 말을 선발해 궁중에 동원하던 관리를 말합니다. 채홍사는 1504년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미녀를 뽑기 위해 전국에 파견한 임시 관원이었습니다. 채홍사는 연산군 때 이후에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산군의 폭정과 황음이 극도로 치달은 1504~1506년에 한정되어 운영된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관직이었습니다.